"CEO가 되면 뇌가 손상된다"를 다섯 겹 거슬러 올라가 봤다
결론부터. 원문에 있던 안전장치는 두 개였고, 서로 다른 층에서 하나씩 떨어졌다.
한국어로 도는 "CEO가 되면 뇌가 손상을 입는다"는 글에서 출발했다. 출처를 타고 올라가니 다섯 겹이 나왔다. 2017년 The Atlantic 에 실린 Jerry Useem 의 취재 기사 "Power Causes Brain Damage", 그걸 다시 쓴 Inc.com 의 Geoffrey James 칼럼, 그 칼럼을 옮긴 lifehacker.jp 의 일본어판, 다시 그걸 옮긴 egloos 블로그의 한국어판, 그리고 그 한국어판을 재게시한 네이버 글이다.
Atlantic 원 기사에는 헤지가 둘 있다. 하나는 their brains weren't structurally damaged after an afternoon in the lab, 실험실에서 오후 한나절 보낸 걸로 뇌가 구조적으로 망가진 건 아니라는 문장이다. 다른 하나는 Keltner 인용에 붙은 acted as if they had suffered a traumatic brain injury,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했다는 양태 표현이다.
첫 번째는 Inc.com 단계에서 사라진다. 두 번째는 Inc.com 까지 as if 그대로 살아 있다가 일본어판에서 "외상성 뇌손상이 있을 때와 똑같은 언동(そっくりの言動)"이 되고, 한국어판에서 "이것은 외상성 뇌 손상이 있을 때와 똑같은 행동입니다"로 굳는다. 한 층이 하나씩 가져간 셈이다. 번역이 범인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절반만 맞았다.
같이 좁혀진 건 주어다. Atlantic 의 제목은 Power 였는데 Inc.com 에서 Being a CEO 가 되고 그 뒤로는 계속 CEO 다. 대학생에게 에세이를 쓰게 한 실험이 대기업 임원 이야기로 바뀐 것도 이 지점이다.
그렇다고 원 기사가 무고하냐면 그건 아니다. "Power Causes Brain Damage" 라는 제목은 본문의 헤지를 안 읽는 사람에게 그냥 주장으로 도착한다(잡지 제목을 저자가 붙였는지 편집자가 붙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뒤의 층들이 제목을 수동적으로 따라간 것도 아니다. 각 층이 자기 몫의 편집을 했다.
밑에 깔린 근거 셋#
그럼 그 제목을 받치는 연구는 얼마나 버티나. 원 기사가 인용한 셋을 하나씩 열어 봤다.
| 근거 | 실제로 잰 것 | 규모와 설계 | 재현 상태 | "뇌가 손상된다"를 받치나 |
|---|---|---|---|---|
| Obhi Hogeveen 외 2014 |
권력감 유도 뒤 TMS 로 잰 운동유발전위 변화(운동 공명 지표) | 대학생 45명, 3집단 단일 세션. 선형대비 d=0.72 | 독립 재현을 찾지 못함 | 아니다. 논문에 brain damage 라는 단어가 없고 지속성을 다루는 설계가 아니다 |
| Keltner 계열 Piff 외 2012 등 |
교차로 끼어들기, 무단횡단 보행자 양보 여부 등 도로 관찰 행동 | 현장 관찰 7개 연구 중 2건이 도로 관찰 | Jung 외 2023 사전등록 재현에서 그 2건 모두 무효과 | 아니다. 계층과 행동의 관계를 본 것이고 뇌를 재지 않았다 |
| hubris syndrome Owen & Davidson 2009 |
전기와 회고록과 연설문에 근거한 사후 평가 | 1908년 이후 미 대통령 18명 + 영 총리 26명. 대면 진찰 없음 | 증상의 발생과 소실을 추적한 연구 없음 | 아니다. 저자가 hubris 의 신경생물학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고 직접 적었다 |
Obhi 쪽이 그나마 실측이다. Hogeveen, Inzlicht, Obhi (2014, JEP: General) 는 대학생 45명에게 에세이를 쓰게 해 권력감을 유도한 뒤 TMS 로 운동유발전위를 쟀다. 권력 3수준 선형대비가 d=0.72, 고권력군과 저권력군만 떼면 d=0.96 이니 효과크기 자체는 작지 않다. 다만 중립군은 어느 쪽과도 유의하게 다르지 않았고, 저자들은 에세이가 실제로 권력감을 유발했는지 확립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적어 뒀다. 그리고 잰 것은 운동 공명 지표이지 공감이 아니다. 미러링이 공감의 초석이라는 건 이 논문이 검증한 명제가 아니라 전제한 명제다. 독립 재현은 찾지 못했는데,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못 찾았다는 뜻이다.
Keltner 쪽은 계열이 넓어 통째로 판정할 수 없다. 대표성을 주장하지 않고 자주 인용되는 것들의 현재 상태만 적는다. Piff 외 (2012, PNAS) 의 현장연구 두 건, 그러니까 고급차가 교차로에서 더 끼어들고 무단횡단 보행자에게 덜 양보한다는 관찰은 Jung 외 (2023, JEP: General) 의 사전등록 재현에서 둘 다 무효과로 나왔다. Galinsky 외 (2006) 의 이마에 E 그리기와 같은 주제를 다룬 Schmid Mast 외 (2009, JPSP) 는 정반대로 고권력자 쪽이 대인 민감성이 더 높다는 결과를 냈다. 같은 과제의 직접 재현이 아니니 반증이라고 부를 수는 없고, 문헌이 한 방향으로 정렬돼 있지 않다는 뜻으로만 읽어야 한다. 자주 같이 인용되는 2017년 PNAS 정정은 표준오차 오기 수정이고 저자들이 결론에 영향 없다고 밝혔으니 흠결로 세지 않는 게 맞다.
hubris syndrome 은 공식 진단이 아니다. Owen & Davidson (2009, Brain) 은 1908년 이후 미국 대통령 18명과 영국 총리 26명을 전기와 회고록과 연설문으로 사후 평가해 14개 항목을 제안한 논문이고, 아무도 대면하지 않았다. 논문 스스로 완전한 의학적 진단에는 대면이 필요하다고 적었고 "hubris 자체의 신경생물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도 적었다. DSM-5 에도 ICD-11 에도 없다. 다만 미등재가 현상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설계가 회고적 해석과 선택 편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쪽이고, 재임 전후 비교나 종단 추적 같은 길이 원천봉쇄된 것은 아니다.
남는 것#
정직하게 말하면 방향도 크기도 확정할 수 없다. "권력감을 유도하면 대인 반응성 지표 일부가 낮아지더라"는 소규모 실험 하나가 독립 재현 없이 놓여 있고, 인접 주제에는 반대 방향 결과가 있으며, 나머지 둘은 애초에 뇌를 재지 않았다. 이건 결론이 아니라 미결이다. 사람들이 이 주장에서 기대하는 "권력이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서사는, 적어도 이 세 근거로는 못 세운다.
남는 흥미는 근거 쪽이 아니라 유통 쪽에 있다. 이 사슬에서 사라진 건 정보가 아니라 전부 유보 표현이었다. 각 층은 팩트를 왜곡하지 않았다. 그냥 조건절을 하나씩 떨어뜨렸을 뿐이다. 그게 다섯 번 쌓이니 "~인 것처럼 행동한다"가 "손상을 입는다"가 됐다. 아마 유보 표현이 제일 먼저 잘리는 건 그게 제목에 안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걸 되짚는 비용은 유통 비용과 대칭이 아니다. 옮기는 데는 한 사람이 한 번씩 다섯 번이면 되는데,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논문 넷과 반나절이 들었다. 나도 처음엔 제목만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수준에 대해. Atlantic 본문, lifehacker.jp 일본어판, 한국어판, 그리고 Hogeveen 외 2014 와 Owen & Davidson 2009 원문은 직접 읽었다. Inc.com 칼럼은 원문이 열리지 않아 제3자 전재본으로 확인했으므로 그 층에 대한 판단은 정황 수준이다. Piff 관련 재현과 정정, Schmid Mast 2009 는 서지와 초록 수준에서 확인했고 원문 전문은 보지 않았다.